'배구 남매' 이다현-준영…"함께 '태극마크' 달 날이 왔으면"
2025-01-05 12:46:34 (20일 전)
한국 스포츠에서 '남매 선수'를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부자, 모자가 대를 이어 활약하거나 형제나 자매가 한 종목에서 뛰는 경우는 종종 눈에 띄지만, 성별이 다른 남매가 함께 활약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이런 가운데 올 시즌 프로배구 무대에 함께 코트를 누비는 남매가 생겼다. 바로 이다현(24·현대건설)과 이준영(22·KB손해보험)이다.
2019-20시즌 이다현이 먼저 여자부에 데뷔했고 이준영은 올 시즌 '루키'로 프로무대에 발을 들였다. 둘은 포지션도 미들블로커로 같다.
후반기 시작을 앞두고 뉴스1과 만난 이다현-이준영은 다정한 '남매애'를 과시했다. 누나는 어리게만 보이던 동생이 프로무대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고, 동생은 '배구 선배'인 누나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다현은 "동생과는 거의 매일 연락하고 지낸다"면서 "내가 동생에게 조언을 해줄 때도 있지만, 막상 내 루키 시절 영상을 찾아보면 나도 너무 못했다. 처음은 다 그런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준영도 "팀에 입단한 뒤 엔트리에 들자마자 누나한테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누나가 밟아왔던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프로에 와서도 마찬가지"라며 웃어 보였다.
둘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프로 데뷔는 이다현이 5년이나 빨랐다. 이다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 무대에 직행했기 때문이다.
2019-20시즌 전체 2순위로 지명된 이다현은 3년 차 시즌인 2021-22시즌부터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대선배 양효진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기량이 빠르게 성장했고, 여자부를 대표하는 '거미손'이 됐다.
한양대학교를 3학년까지 마친 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한 동생 이준영은 전체 4순위로 KB손보에 입단했다.
그는 1라운드 막판인 지난해 11월 5일 대한항공전에서 감격의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나흘 뒤인 한국전력전에선 데뷔 첫 득점과 블로킹까지 기록했다.
프로에서의 '첫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준영은 "누나의 조언을 받았지만, 막상 코트에 들어가니 너무 긴장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서 "그다음 첫 득점을 한 경기에선 공격을 성공하고도 반칙한 줄 알아서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이다현 역시 동생의 데뷔전과 첫 득점 경기를 누구보다도 가슴 졸이며 봤다고.
그는 "보는 입장이 더 떨렸다"면서 "그저 실수만 하지 말라는 생각으로 지켜봤는데, 잘 해줬다. 한편으로는 믿고 있었다"며 대견해했다.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다현과 달리 이준영의 경우 아직 첫 시즌인 만큼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출전 빈도는 늘고 있다. 원포인트 서버와 원포인트 블로커에서 선발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잦아졌다.
이 역시 누나가 밟아온 길이기도 하다. 이다현 역시 데뷔 첫 시즌엔 교체 출전이 많았으나 2번째 시즌부터 서서히 자리를 잡았다.
이다현이 동생에게 해주는 '조언'은 간단했다. 그는 "신인 때는 그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부담감이 있고 불안한 게 있다면 연습으로 극복해야 한다. 성실하게 연습하면 결국 경기에 나가게 된다"고 했다.
이준영 역시 누나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팀 선배들이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하시지만, '신인이니까 괜찮다'는 마인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직 큰 역할을 맡진 않지만, 그 작은 역할이라도 팀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이다현-이준영 남매는 어머니는 류연수로, 1990년대 실업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배구 선출'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들 남매에게 배구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상이었다.
이다현은 "가족끼리 밥 먹을 때도 80% 이상이 배구 얘기"라면서 "엄마가 코치 선생님 이상으로 섬세하게 코칭을 해주신다. 동생에게도 물어볼 것이 있기 때문에 가족이 배구 선수인 것은 분명한 장점"이라고 했다.
이준영도 "중고등학교 때는 엄마의 쓴소리가 무척 힘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 맞는 말이라는 걸 이해한다"면서 "프로 와서도 '이다현 동생'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고쳐먹었다"며 웃었다.
이미 누나가 프로 데뷔한 뒤의 경기를 수도 없이 봤지만, 본인이 프로 무대를 밟은 뒤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고. 새삼 누나가 갈고 닦은 길이 대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는 동생의 생각이다.
이준영은 "성별은 다르지만, 같은 종목에 같은 레벨이지 않나"라며 "대학교 배구를 하다 프로에서 직접 겪어보니 누나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을 해왔다는 게 체감됐다"고 했다.
특히 이다현이 무려 11블로킹을 잡아냈던 지난해 11월 16일 정관장 전을 '직관'하고는 감탄을 넘어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준영은 "경기 중간에 왔는데, 1세트에만 7개를 잡았다고 하더라. 그게 남녀 통틀어 최다 타이기록이라고 해서, '미쳤다'는 생각만 했다"면서 "누나가 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거니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 올 시즌 블로킹 기록이 3개다.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막상 '당사자'인 이다현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하다 보면 감이 좋은 날이 있는데 그날이 그랬던 것 같다"면서 "블로킹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결국은 결과론이라 생각한다. 크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이다현은 이미 국가대표팀에서도 매번 볼 수 있는 이름이 됐다. 그는 프로 2년 차 시즌부터 매번 대표팀에 발탁돼 비시즌도 바쁘게 보낸다.
체력적인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정이지만, 이다현은 '태극마크'의 가치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당장 2025년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대표팀과 관련된 것이다.
이다현은 "올 시즌이 끝나고 FA가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생각한 것이 있다"면서 "올해에도 대표팀 성적이 좋지 못하면 VNL에서 강등되기 때문에, 그 부분을 크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준영은 아직 국가대표를 생각하기엔 이르지만, 언제나 그랬듯 누나가 밟아온 길을 따르고 싶은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당장 욕심을 내기보다는 언젠가는 할 수 있다는 목표로 삼고 싶다"면서 "태극마크를 바라보고 열심히 기반을 다지다 보면 나도 누나처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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