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 없어 외로웠던 이현중, 기약 없는 황금세대
2024-11-25 11:46:47 (4일 전)
라건아의 빈자리는 역시 컸다. 한국농구가 기대를 걸었던 황금세대의 탄생도 좀처럼 진전이 없다. 안준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농구대표팀이 주축 선수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강호 호주와의 홈경기에서 완패했다.
지난 24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5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A조 4차전에서 한국은 호주에 75-98로 대패했다. FIBA랭킹 7위의 호주는 세계적인 강팀답게 53위의 한국을 공수 양면에서 압도했다.
한국은 1쿼터 출발이 좋았다. 높이에서 호주에 크게 열세인 한국은 초반부터 고강도 압박으로 호주의 볼핸들러들을 괴롭히는 데 집중했다. 이우석과 이현중이 속공과 림어택으로 공격을 주도했고 유기상의 3점슛까지 터지며 호주와 접전 끝에 19-19로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2쿼터부터 한국의 리바운드 열세와 잦은 턴오버 틈을 타 호주의 외곽포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흐름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외곽으로 공격의 활로를 찾으려했던 한국은, 스크린과 스위칭 플레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한 압박을 펼치는 호주의 수비에 막혀 3점슛을 시도할 타이밍도 좀처럼 잡지 못했다.
한국이 공격을 연이어 실패하는 상황에서 호주는 14점을 연속으로 득점하면서 점수차가 최대 25점차까지 벌어졌다. 한국은 이우석의 3점슛으로 전반을 32-54로 마쳤다.
3쿼터 들어 한국은 여러 선수들이 고르게 득점에 가세하며 58-69로 호주와 점수차를 11점차까지 좁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리바운드의 우위를 등에 업고 잠시 주춤했던 호주의 외곽이 4쿼터에 살아나면서 다시 점수차가 벌어졌다. 호주의 슈터 크리스토퍼 골딩은 이날 3점슛 10개 포함 무려 31득점을 터뜨리며 한국을 괴롭혔다.
호주는 이날 리바운드 싸움에서 48-37로 우위를 점했고 3점슛도 무려 16개나 성공시키며 높이와 외곽슛 모두 한 수위의 전력을 증명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뛰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자국 리그 위주로 꾸린 선수단으로도 한국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크게 느껴진 라건아의 빈자리
한국은 에이스 이현중이 14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분전했다. 하지만 장기인 3점슛은 4개를 시도하여 단 한개도 성공시키지 못한 게 옥에 티였다. 이우석도 17점 5리바운드, 3점슛 3개로 선전했고, 변준형은 10점을 기록했다.
이로써 1승 1패로 올해 마지막 A매치 2연전을 마감했다. 한국은 앞서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고전 끝에 86-78로 신승하며 A조에서 2승 2패로 조 2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4전 전승의 호주다.
2025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컵 본선에 나설 팀을 가리는 이번 예선에선 각 조 상위 2위와,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이 본선에 합류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조 2위를 아시아컵 본선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2연전에서는 과정과 내용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더 많았다. 일단 주축 멤버인 이정현, 하윤기, 김종규 등 주전급 선수들 다수가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며 최상의 전력을 꾸릴 수 없었다.
특히 계약만료로 한국과 결별한 귀화선수 라건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라건아가 건재할 당시 한국은 전체적인 높이에서는 열세여도 골밑을 쉽게 허용하거나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라건아가 뛴 지난 2월 경기에서는 호주 원정에서도 중반까지 접전을 벌이며 패했지만 14점차로 선전한 바 있다.
현재 이원석, 이종현, 이승현으로 꾸려진 한국의 빅맨진은 국제무대에서는 단지 높이뿐만이 아니라 파워와 스피드, 슛 등에서 무엇 하나 상대팀보다 뚜렷한 장점이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주 포지션이 슈터인 장신포워드 이현중이 사실상 빅맨 역할까지 수행하며 고군분투해야 했다.
이현중은 2연전에서 총 20개(인도네시아전 11개, 호주전 9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빅맨진을 제치고 한국 선수들중 가장 많은 리바운드를 책임졌다. 호주전 3쿼터에는 상대 선수의 거친 파울에 대해 동료들을 대신해서 적극 항의하며 기싸움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격렬한 몸싸움과 수비에 체력을 소모하느라 상대적으로 공격에서는 힘이 떨어졌다. 2연전 동안 총 15개의 3점슛을 던져 림을 가른 것은 인도네시아전에서 4쿼터 막판에 기록한 단 1개뿐이었다.
내년 2월 원정 경기... 향상된 경기력 기대해도 될까
인도네시아전에서는 찬스는 많았어도 이현중의 슛감이 좋지 않았다면, 호주전은 상대가 이현중의 플레이스타일을 분석하고 철저히 봉쇄한 탓에 3점슛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제이콥 찬스 호주 대표팀 감독은 경기후 인터뷰에서 "이현중의 3점슛이 위협적인 선수임을 잘 알고 있어서 경계했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현중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패턴이나 그에게 몰린 집중견제를 분산시켜 줄 만한 동료가 없었다. 만일 라건아가 있었다면 골밑과 외곽에서 이현중과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투지나 집중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표팀을 향한 지원이나 국제 경쟁력 강화에 소극적인 대한민국 농구협회의 행보는 아쉽다.
라건아가 비록 30대 중반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기량도 크게 녹슬지 않고 대표팀에 대한 의지도 강했던 상황에서, 협회는 라건아와 대책없이 결별한 이후 아직까지 대체 귀화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 이제 아시아 경쟁팀들은 전력강화를 위해 귀화선수 한두 명 이상은 기본으로 보유하고 있다. 순수 국내 선수들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한국농구는 아시아에도 빅맨진의 높이와 운동능력이 하위권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표팀이 현재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현재 국내 농구계에 1999년생 이하 젊은 선수들의 신체조건과 잠재력이 좋다는 점이다. 이정현-이현중-여준석-하윤기 같은 KBL리거와 해외파 선수들, 그리고 다음 귀화선수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문태종의 아들 재린 스티븐슨까지 가세하면 한국판 '황금세대' 구축도 가능하다는 장밎빛 시나리오다.
문제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아직 시작도 못해봤다는 것이다. 일단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다. 해외에서 활약하던 이현중은 이번이 무려 3년만의 대표팀 귀환이었고, 정작 이현중이 가세하자 에이스인 이정현과 하윤기가 부상으로 빠졌다.
또다른 특급 유망주로 꼽히던 여준석은 미국 곤자가대 입학 이후 출전시간 확보도 어려운 벤치멤버에 그치고 있다. 재린 스티븐슨은 아직 19세의 어린 선수에 불과하며 한국 국적을 얻어 대표팀에서 뛰려면 특별귀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직 이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모여서 제대로 한번 손발을 맞춰본 경험도 없다. 농구대표팀의 전력강화를 위한 협회의 지원이나, KBL과 연계된 장기적인 계획 등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과 선수들에게만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올해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농구는 내년 2월 20일 태국과 23일 인도네시아와 원정경기에 나선다. 내년에는 좀 더 향상된 대표팀의 경기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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