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흥’이라는 평가를 못 받으니 개막 8연승 달리는 흥국생명…
2024-11-21 11:03:40 (3일 전)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수식어를 들으며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2022~2023 챔피언 결정전에서 도로공사에 2연승을 거두고 내리 3연패를 당하며 사상 초유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이 됐지만, 가장 탄탄한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2라운드까지 11승1패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어우흥’은 현실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옐레나의 태도 논란과 기량 하락세로 경기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현대건설의 강력한 추격을 받았고, 시즌 막판 페퍼저축은행에게 당한 일격의 ‘충격파’가 승점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면서 현대건설에 정규리그 1위를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정관장과의 플레이오프를 2승1패로 간신히 뚫고 챔프전에 올랐지만,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기다린 현대건설에게 3전 전패로 패퇴하고 말았다. 3경기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기에 챔프전 패배의 충격은 도로공사에게 당한 ‘리버스 스윕’만큼이나 컸다.
2024~2025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에겐 더 이상 ‘어우흥’이란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이렇다 할 전력보강을 하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기량도 시원찮다는 평가였다. 트레이드를 통해 세터-리베로 라인을 이고은, 신연경으로 교체하면서 주전 7명 중 2명(김연경, 김수지)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 얼굴로 바뀐 것도 변수가 컸다.
배구란 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작 어우흥이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시작한 시즌인데, 더욱 강력한 출발을 보이고 있는 흥국생명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2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정관장과의 원정경기에서 공격과 수비, 블로킹 등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매 세트 고비가 있었지만, 흥국생명은 이를 이겨낼 힘이 있었다. 디그 숫자 53-44, 유효 블로킹 21-11의 우세에서 알 수 있듯, 흥국생명이 상대를 이겨낸 비결은 화려한 공격만이 아니었다.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며 상대의 공격을 받아냈고, 블로킹 셧아웃을 시키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바운드시켜 수비를 용이하게 만들어냈다.
받아올린 공은 ‘배구여제’ 김연경에게 올려주면 그대로 득점으로 연결됐다. 승부를 끝낸 3세트 21-21 동점 상황에서 김연경은 자신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토스가 붙어 정상적인 공격이 어려울 땐 상대 블로킹을 역이용하는 페인트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켰다. 토스가 제대로 올라오면? 상대 수비가 손도 쓰지 못하는 강타로 철퇴를 내렸다. 막판 4점을 모두 책임진 김연경의 활약을 앞세워 흥국생명은 파죽의 개막 8연승을 달렸다. 이날 김연경은 공격 성공률 56.67%로 양팀 통틀어 최다인 20점을 몰아쳤다. 리시브 효율은 45.45%(5/11), 디그 6개까지. 공격과 수비에 걸쳐 완벽했다.
경기 뒤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김연경은 ‘개막 8연승’에 대해 “선수들끼리 이기고 지고에 대한 얘기를 많이 안 한다. 이기고 있는 와중에도 부족한 플레이가 보인다. 그간 부족했던 것을 준비해서 나왔는데, 상대 정관장의 메가 선수가 결장하면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잘 대비해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개막 8연승은 김연경조차 예상하지 못한 행보다. 그는 “저희가 FA 시장에서 그리 좋지 못했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보완하긴 했지만 워낙 새 얼굴들이 많아지면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조차 ‘이 팀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통영 KOVO컵에서 1승2패로 조별리그 탈락하면서 선수단 모두가 침울해했다”라고 개막 직전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주전들의 면면이 크게 바뀐 흥국생명에게 필요했던 것은 시간이었다. KOVO컵에서의 실패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굳게 먹는 계기가 됐다. 김연경은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같다. 서로 호흡을 맞추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좋아지고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흥국생명의 개막 후 연승은 24일 현대건설전이 가장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19일 시즌 개막전에서 만났을 땐 흥국생명이 세트 스코어 3-1로 완승을 거두긴 했지만, 최근 현대건설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완벽한 상황이다. 김연경 역시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건설의 경기력이 워낙 좋다”라면서 “제가 기대하는 것은 올 시즌 주말 홈경기가 이번이 처음이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승리로 마무리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현대건설에는 김연경의 절친한 후배인 양효진이 버티고 있다. 최근 경기를 앞두고 연락을 주고받은 게 없냐는 질문에 “효진이랑은 일부러 연락을 서로 안하고 있다. 일종의 밀당(밀고 당기기) 같은 것이다”라고 웃으며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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