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끝판왕
2017-11-18 04:31:06 (7년 전)
중국 대륙의 마지막 왕조, 청(淸)
청 왕조 끝의 중심에 있었던
황후 서태후의
사치스럽고 향락스러운
일화에 대해 알아보자
서태후는 본래, 가난한 한족 농민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의귀비(懿貴妃)란 직첩을 받은 후궁이었다.
이후 함풍제의 아들을 낳아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서태후는 후궁으로 입궐 후,
황제의 수행길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황제가 산책하는 시간에 맞춰 가까운 곳에서 노래를 불렀고,
당시, 노래를 잘 불러 인간 꾀꼬리라는 별명이 붙었던
서태후이니 만큼,
서태후의 노래 소리는 곧장 황제의 귀에 꽂히게 된다
이에, 황제는
"저 아이를 오늘 밤 침전으로 들게하라"
고 명하였고,
가난한 농민의 딸, 서태후는
단숨에 출세길에 오르게 된다.
이후 서태후는
함풍제(청, 9대 황제)의 유일한 아들,
동치제를 낳자,
후계자의 생모로서 황후에 준하는 지위를 얻게되었다.
그러나 함풍제가 30세의 젊은 나이에,
1861년 사망하면서
아들 동치제가 6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함풍제의 정식 황후인
동태후와 같이
섭정을 행하면서 권력을 잡게 된다
그 후,
동태후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청나라 권력은
서태후가 장악하게 되었다.
태자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서태후는
매우 사치스럽고 향락스러운
생활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서태후의 사치에 대한 것은
워낙에 일화가 많은데
일단 서태후는
식탐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우선 진귀한 음식에 관심도 많고
식탐 또한 대단했는데
한 끼에 128가지나 되는 음식을 먹었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백은 100냥이었다.
이것은 당시 중국 농민의
약 1년 치의 끼니에 해당하는 정도의 금액이었으며
농민 1천여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를 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2000년 전후의 한국을 기준으로 약 800만원 정도다
그리고 절대 같은 음식을 3번 이상 먹지 않았다.
어떤 때는 관상용으로 호화스런 음식을 가득 차려서
따로 내놓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리고기, 돼지고기 등 육식을 무척 좋아했으며,
서태후가 전용열차를 타고 지방에 가는 날이면 16량의 열차에서 4량이 주방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서태후의 식사 준비를 수행하는 요리사만 50~100여 명.
그것도 각종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빼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년에는 자신의 미용을 위해 날마다
산모들을 처소까지 불러서 신선한 모유를 매일같이 먹었다고 한다.
젖이 잘 나오는 두 부녀자를 선발해
이들이 몸에 꼭 붙는 진홍색 상의를 입고 유두만 드러낸 채
태후는 침상에 누운 채로 젖을 먹었다.
이 때 산모는 무릎을 꿇은 채 서태후에게 젖을 물려야 했는데,
이는 서태후 본인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화원에 거주할 때도 전화를 설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가관.
바로 자신과 통화하는 상대방이 건방지게 누워서 통화하는지 무릎을 꿇고 통화하는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서태후의 운전기사도 예외가 아니라서
무릎을 비스듬히 꿇고 차를 운전해야만 했기 때문에
서태후가 탄 차는 늘 잔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옷은 3000여 상자나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고 다녔고
특히 보석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였다.
언제나 비취와 진주로 머리 장식을 했으며.
비취 구슬과 진주를 매단 옷을 입었다.
비취 팔찌, 비취 반지 뿐 아니라 손톱에까지 비취 보호판을 달았다.
식탁도 비취로 만든 식기들로 차리게 했으며, 비취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게 하였다.
버선과 신발에도 굉장히 신경을 썼는데
문제는 아무리 예쁜 버선과 신발이라도 한 번 신고 나면 다시는 신지 않았다.
버선과 신발을 만드는 데만 매년 3천 명 가량이 동원되었고,
그 비용은 매년 1만 냥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치중에서
서태후가 가장 많이 비판받는 것은
바로
이화원 건립이다.
당시 서태후는
이화원 건립을 위해
은전 3000만 냥을 썻는데,
이는 당시 청나라 해군 예산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이화원 건립을 위해 서태후가
국방 예산을 유용했다는 것에는
명확한 증거가 없지만
이 정도로 큰 돈이 정원 건설에 사용된 점은 분명하다.
해군의 예산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당시 중국의 정세를 보건대 일본과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국가 지도자라면 당연히 국방에 힘을 써야 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지은 이화원은
모든 면적을 합하면
그 크기가 여의도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화원에서 서태후는
수많은 별미를 즐기고, 향락을 즐겼다.
(이화원 인공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는 서태후)
이화원 남호도에는
서태후의 침실이 있었는데,
27세에 과부가 된
서태후는
그곳으로
미소년과 청년들을 불러
수청을 들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곤,
일을 마치고
아침이 되면
늘 남자들이 사라졌는데,
이는 자신과의 일을 발설할까 염려하여
모두 죽였다고 한다.
이것이 두려워, 남호도로 불려간 남자들은
서태후의 부름을 피하려고 일부러 씻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내려온다.
사치와 향략을 일삼던
서태후가 죽은 뒤,
무덤이 도굴되었는데
당시
손전영은 중국 국민당의 북벌로 상황이 불리해지자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덤을 도굴하기로 작정하였고
무덤에는 늙은 병사 하나만 지키고 있어서 쉽게 들어갈 수 있었으며
아예 폭약으로 입구를 폭파하고 들어갔다.
그의 엄청난 부장품을 챙길 때 서태후의 시신은 옷이 벗겨지는 것은 물론,
도굴하던 군인들이 입에 넣어진 야명주를 꺼내기 위해
시신을 입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세로로 갈라버린 후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렸다고 한다
근데 정작 저 서태후 조차도 황실예산 범위를 넘지 않게 썼다는데........ 민비 당신은 대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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